내 평점 : 8.5 / 10
주인공 상훈은 똥파리 같은 존재다. 도무지 존재 자체가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똥만 찾아 다니는 똥파리 같이 상훈은 입만 열면
욕설을 쏟아내고 폭력을 행사하여 돈을 버는 용역일을 한다.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용역업체 사장이자 친구인 만식 덕분에
그는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그 마져도 아버지의 배다른 딸 현서가 낳은 조카 형인에게 몰래 생활비로 모두 줘버리는 알수없는
인간이다. 그는 어느 날 골목에서 자신 만큼이나 억세고 강한 여고생 연희를 만나게 된다. 연희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아버지와 엇나가버린 오빠 영재와 함께 매일을 지옥같이 사는 희망이 없는 고등학교 3학년생 이다.
상훈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연희를 통해서 현서와 형인 곁에 점점 다가서지만 연희의 오빠 영재가 상훈의 용역업체로
들어와 상훈에게 일을 배우면서 상훈이 원하던 미래는 서서히 비극으로 바뀌어 간다.
(스포 마지막 1줄.)
똥파리는 결국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 이다. 상훈에게 있어서 소통이란 '욕찌거리' 아니면 '폭력'일 뿐이다.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이 된 하나 뿐인 조카 형인에게 만나자 마자 암바를 걸고 욕설이 섞인 질문 밖에 할 수 없는 상훈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때리던 알콜중독 아버지가 있었고 결국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여동생을 한꺼번에 잃는다.
그래서 그는 교도소에서 나온 아버지를 보이는데로 폭행 한다. 어린 시절 그가 무수히 보았고 고통 받았던 바로
그 방법 그대로 아버지에게 엄마와 여동생을 잃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가 배운 소통의 방식이 바로 폭력이다.
연희도 이미 폭력과 폭언의 소통이 상훈을 만나기 전 부터 익숙하다. 정신이 나간 아버지는 매일 죽은 어머니를 찾으며
그녀를 괴롭히고 폭력적으로 매일 돈을 요구하며 밖으로 도는 오빠 영재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런 연희가 만나자 마자 욕설을 퍼붇고 폭행을 하는 상훈에게 끌리는 것과 자신의 방식에 움츠러들지 않고 더욱
당당한 연희에게 상훈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희와 상훈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훈은 연희를 통해 일반적이고 평범한 소통의 희망을 가진다. 그는 통장을 만들어 돈을 모으고 가지고 있던 삐삐 대신
휴대폰을 개통한다. 연희는 상훈을 통해 폭력적이지만 상처 많고 서툰 상훈 안의 따뜻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게 된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생활비를 보태면서 새로운 꿈을 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폭력은 안타깝게도 폭력이란 방식으로
소통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잔인한 현실이다. 상훈이 폭력이라는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으려 하지만 이미
그는 너무 깊은 곳으로 빠져 버렸기에 그 폭력의 굴레를 빠져나오기란 너무나 힘이 든 것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서 그렇게 쓸쓸히 죽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비록 해외 영화제를 휩쓴 독립영화라고 해서 양익준이 감독 각본 주연까지 모두 혼자 해먹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기대한 만큼은 되는 영화이다. 물론 영화 내내 불쾌하게 계속 되는 욕설과 폭력의 장면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평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전부터 머리 속에 있었던 생각이 더욱 명확해 졌다.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 표현은 바로 폭력 뿐이다.'라는 것이 바로 그 것이다.
앞으로도 '똥파리'같은 좋은 독립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수많은 독립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직
'우리 학교' 와 '똥파리' 밖에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워낭 소리'는 아직 안봤으니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