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만하임에 갔을 때 갤러리아 백화점에 전시된 대형 레고들을 전차를 기다리며 구경했다.





평소엔 보기 힘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서 레고로 만든 대형 눈사람.










그 외에 여러 눈길을 사로 잡는 대형 레고 디스플레이가 멋있었는데
기다리던 전차가 갑자기 오는 바람에 달랑 두 장 뿐이다.


하지만 한참을 쇼윈도에서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생각나서 친구와 그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녔던 옛날 옛적에...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리 저리 모은 레고들로 이것 저것 만들면서 노는 것을 한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인기있던 '중세의 기사와 성'과 같은 고가이면서 큰 레고는 누구나 그렇듯이 한번 선물 받기가 참 힘들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제나 장난감 선물 1순위 였던 레고.
그리고 레고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속의 우리 친할머니.

그 때가 아마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나 되었을 때 인가?
우리 할머니는 환갑이 넘으신 연세로 고모를 방문하시기 위해
홀로 비행기를 타시고 대륙 저멀리 독일까지 날아 가셨다.
해외여행은 커녕 해외 연수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딸을 보기 위해 15시간이 넘는 거리를 혼자 가신
우리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신 분 같다.
아무튼 두달이 넘는 독일 방문을 마치시고 한국으로 무사히 할머니가 돌아오시던 날,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었다.
어른들은 직접 마중 나가시고 나는 할머니댁에서 언제 도착 하시는지 모르고
할머니를 무작정 기다리던 그 시간은 정말 너무나도 길었었다.
새벽 비행기로 도착하신다는 할머니를 기다리며 졸다 깨다하기를 반복하며 결국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할머니를 기다린 오직 한가지 이유는 전에 국제전화로 할머니께서
'우리 석이 줄 장난감 사가니까 기다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나의 무언지 모르는, 하지만 할머니가 사오실 '독일(외국) 장난감'에 대한 기대감은 정말 엄청 났었다.
밖이 웅성 웅성하고 마중 나갔던 분들이 돌아오시고 드디어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잠결에 비몽사몽 누워있던 나에게 할머니는 들어오시자마자 까칠까칠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며
'어이구 우리 새끼, 많이 보고 싶었제?'라고 하셨다.
기다림에 지쳐서 그리고 졸려서 깨지 못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다른 짐보따리는 모두 제쳐두고
운동화상자 정도 되는 물건을 눈 앞에 불쑥 들이 미신다.
'우리 석이를 위해 할매가 사온 장난감 이다'
순간 잠이 번쩍 깨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얼른 받아든다.
 그것이 바로 '레고'였다.
그것도 당시 한국에서는 팔지도 않았던 '레고 테크닉'이라는 만들기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멋저보이는 경주용 차를 만드는 복잡한 '기계'레고  였다.
레고상자를 손에 들고 할머니 품에 안겨서 쭈글쭈글한 할머니뺨에 얼마나 뽀뽀를 많이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아직도 레고만 보이면 그 기억만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정말 무지무지 기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외에도 독일제 필기구 부터 박스 초콜렛, 과자, 소세지, 옷, 가방 등등 많은 선물을 가져 오셨지만
나에겐 달콤한 초콜렛보다 일제보다 더 좋은 필기구 세트보다 레고가 최고의 선물이었다.
할머니 자신을 위해서는 팔뚝만한 안마기 하나를 챙겨오시고
나머지는 모두 친척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사오셨는데
하나 밖에 없는 손자에게 주기 위해 유독 특별히 따로 사오셨던 것이 바로 그 레고 였었다.
그 어려웠던 레고를 내가 모두 조립했는지는 기억은 잘 안나지만
후에 내가 가진 잡동사니 '수준 낮은' 레고 와 섞여서 여러모로 잘 가지고 놀았었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은 이런 추억들 덕분에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첫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된 어느 날,
하교를 하는데 기분이 갑자기 너무 이상했었다.
그 날 저녁 할머니는 손자의 생일을 5일 남겨두고 그렇게 떠나셨다.
그 후 가끔 학교친구들이 할머니가 사주신 선물을 자랑 할 때 면 나는 할머니의 '레고'를 떠올렸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녀석들의 선물 받은 워크맨도 신발도 옷도 나의 '레고'에 비교할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있는 후회 한가지...
할머니는 어린 손주와 마주보고 앉아 같이 민화투를 치고 싶으셔서 몇번이고 가르쳐 주려고 하셨는데
똑같이 생기지도 않은 그림들을 맞추고 정리하기에는 국민학생인 나에게 벅찼는지
항상 티비에 정신이 팔려 '다음에 배울게요, 다음에...'하며 미루었었다.
결국 배우지 못했었고 할머니와 마주 앉아 민화투를 칠 기회는 그 후 로 더 이상 없었다.
'무료하셨던 할머니를 위해서 배우고 같이 쳐드렸었으면.....'
지금까지 남겨진 후회는 레고에 대한 추억과 함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제나 함께 떠오른다.
그리곤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퍼온 레고 테크닉 사진.
Posted by Sieben_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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